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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9일간의 호주여행 7] 골드코스트, 골드코스트 하는 이유가 있구나. 내가 느낀 골드코스트
    해외여행/9일간의 호주여행 2022. 12. 28.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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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골드코스트의 해변에 발을 내딛으니 따뜻하고 고운 모래가 두발을 슬며시 품습니다. 앞으로는 끝없이 펼쳐진 거대한 태평양이 보이고 양 옆으로도 끝을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긴 모래사장이 두 눈에 담깁니다. 동해의 바다가 깨끗하면서 약간은 시원한 느낌이라면, 골드코스트의 바다는 거대하면서도 따스한 느낌입니다. 해변을 따라 밀려드는, 규칙적인 척하면서도 중구난방인 파도는 왜 골드코스트가 서핑으로 유명한지 말해줍니다. 긴 시간 동안 좁은 비행기와 기차, 버스에서 갑갑했던 마음이 탁 트인 바다를 보니 조금은 여유로워집니다. 이제 6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이지만 벌써 골드코스트의 해는 뉘엿뉘엿 넘어갑니다. 

     

     

    골드코스트의 일몰. 골드코스트는 호주대륙의 서쪽에 위치해 있기에, 골드코스트에서는 해도 바다를 바라보며 사라집니다.

     

     

    한국에서 태어나서 자라난 사람으로, 바다는 신기한 공간이라던가, 살면서 한번쯤 꼭 가고 싶은 그런 공간은 아닙니다. 전국 교통망이 잘 발달되어있는 한국에서는 아무리 내륙에 사는 사람이더라도 동쪽, 서쪽, 혹은 남쪽으로 서너 시간만 가면 어디서나 바다를 만날 수 있으니까요. 그럼에도 바다는 가끔씩 찾고 싶은 공간이긴 합니다. 한국에서도 가끔씩 바다에 가고 싶다는 충동으로 바다로 향한 적이 종종 있습니다. 해변을 덮고 있는 모래 위에 앉아 규칙적이지만 불규칙적으로 귀에 스며드는 파도 소리를 즐기며, 걸리는 것 없이 수평선까지 내달리는 시선에 나를 맡기며 아무 생각 없이 시간을 보내다 보면 특별한 걸 하지 않았음에도 몸과 마음이 맑아지곤 했습니다. 하지만 모든 바다가 다 같은 바다는 아니었습니다. 많은 바다 중에서도 시원한 울진 바다와 가장 다채로웠던 통영 바다를 가장 좋아했었습니다. 물론, 결국은 가장 가까운 서해바다를 찾곤 했지만요. 그런 의미에서 골드코스트의 바다는 동해와 서해의 장점을 다 가진 바다 같습니다. 남해와 같은 아기자기한 맛은 없어도, 서해와 같은 나지막함과 동해의 장엄함이 동시에 공존하니까요. 특히 멀고 먼 여정을 돌아와 맞이한 골드코스트의 바다이기에 조금 더 특별하게 다가옵니다. 특별함을 위해 굳이 고생을 할 필요는 없지만, 역시 고생 끝의 달콤함은 특별하게 남습니다. 눈을 감고 파도 소리에 조금 더 집중해봅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음은 바쁜 삶을 사는 현대인들에게 조금 특별한 의미로 다가옵니다. 언제 어디서나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굳이 노력하지 않으면 그런 시간을 갖기는 힘드니까요. 잠깐이라도 가만히 있지 못하고, 조금이라도 쉬면 세상에서 도태될 것만 같은 느낌을 받는 제게, 30시간이 넘는 긴 여정의 시간 덕분에 이번 여행만큼은 편히 쉬어도 된다는 안도감을 느낍니다. 해가 등 뒤로 넘어가며 하늘이 조금씩 짙어질 때가 되어서야 골드코스트의 해변을 떠납니다. 여전히 몸은 피곤하지만 마음과 정신은 한층 맑아진 느낌입니다.

     

     

     

     

    낮에 다시 만난 골드코스트의 해변한 한층 더 뜨거워지고 더 활발해진 모습으로 저를 맞이합니다. 수영을 하는 사람, 해수욕을 하는 사람, 서핑을 타는 사람, 일광욕을 즐기는 사람, 비치발리볼을 하는 사람, 그저 해변을 따라 걷는 사람. 모든 사람들이 각자 저마다의 방법으로 골드코스트의 해변을 즐깁니다. 스쿨 리즈 기간인 데다가 본격적인 여름 시즌이 시작되는 시기이기에 꽤 많은 사람을 예상했지만, 모인 사람들은 50km가 넘는 골드코스트의 해변을 채우기에는 역부족입니다. 현지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이것도 사람이 꽤 많은 거라는데, 아마 골드코스트가 있는 퀸즐랜드에 사는 사람들이 모두 모여도 한여름 광안리나 해운대에는 미치지 못할 것 같습니다.

     

    골드코스트에서 꼭 해보고 싶었던 서핑에 도전해봅니다. 몇년간 텍사스에서 파도가 없는 민물에서 패들보드나 즐기던 제게 서핑은 마치, 중학생이 수능 시험지를 마주한 순간 같습니다. 파도 속에서 앞구르기 몇 번 뒷 구르기를 몇 번 하고, 목과 식도가 바닷물에 충분히 염장이 되었다고 느꼈을 때가 돼서야 드디어 서핑보드에 엎드려 파도를 몇 번 타봅니다. 서핑 강사와 함께 서핑 보드 위에서 몇 번 일어나 보려고 시도해보지만, 앞구르기와 뒷구르기 횟수만 늘릴 뿐입니다. 해변으로 나와 서핑을 꽤나 타는 사람들을 지켜봅니다. 그 사람들은 파도를 읽습니다. 어떤 파도가 자신과 가장 잘 맞는 파도인지를 알고, 어떤 타이밍에 그 파도 위에 올라야 그 파도 위에 머무를 수 있는지 알고 있습니다. 몇 번의 관찰 끝에 다시 한번 도전해보지만, 역시나. 이번엔 햄스트링이 갑자기 수축하는 게 느껴집니다. 물속에서 간신히 중심을 잡고 한 다리로 해변으로 와서 눕습니다. 누가 텍사스 사는 사람 아니랄까 봐, 제겐 잔잔한 민물이 더 맞는 것 같습니다. 제게 파도는 볼 때가 가장 아름답습니다. 그래도 살면서 서핑을 한 번 시도는 해봤다고 말할 수 있는 재밌는 경험입니다. 리조트로 돌아와 보니 술 마신 사람처럼 콧등과 볼이 벌겋게 익었습니다. 아뿔싸, 평소에 쓰던 선크림을 아무 생각 없이 썼는데, 워터프루프가 아닌 선크림이었습니다. 특히나 남반구는 오존층이 북반구보다 얆아서 자외선이 더 강력하다고 들었는데 이걸 몸소 증명해 보입니다. 놀 때만 해도 덥다거나, 텍사스처럼 햇빛이 따갑다는 느낌은 없었는데, 텍사스의 뜨거운 여름에서도 익지 않았던 콧등이 골드코스트에 와서 익습니다. 

     

     

    골드코스트 해변의 해 뜨기 40분전(좌), 해 뜨고 15분 후 (우)

     

     

    제가 머무르던 날, 골드코스트에서는 해가 새벽 4시 45분에 뜹니다. 골드코스트의 일출을 보기 위해 3시 30분에 일어나 해변으로 향합니다. 밤사이에 모래를 고르는 차량이 몇 번 지나가서인지 모래가 반듯하게 펼쳐져 있습니다. 평평한 모래에 발자국을 남기며 걷습니다. 해변에는 몇몇 사람들이 이미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해가 뜨는 시간이 조금씩 가까워지면서 하늘은 보랏빛으로 물듭니다. 하루 중 가장 추운 이 시간에 세상은 가장 따뜻한 빛깔로 물듭니다. 해 뜨는 시간이 점점 다가오며 따뜻하던 세상은 조금씩 밝아집니다. 어느 순간부터 하늘은 파란색으로 바뀝니다. 해가 뜨는 순간입니다. 오늘도 동쪽에서 서쪽으로 갈 길이 먼 해는 뜨자마자 눈에 띌 정도로 위로 올라갑니다. 해가 제 갈길을 갈수록 세상은 맑아집니다. 잘 보이지 않던 서퍼스 파라다이스와 브로드비치의 고층 건물들이 햇빛을 반사하며 밝게 빛납니다. 본격적인 아침의 시작입니다. 

     

     

    해가 뜬 직후의 골드코스트

     

     

    텍사스 오스틴은 서머타임이 끝나기 전인 11월 초에는 해가 거의 8시가 다 되어서야 뜨고, 서머타임이 끝난 직후인 11월 중순이 되어도 7시가 되어서야 해가 뜨곤 합니다. 아침에 출근을 하는 시간인 6시 30분 정도에는 거리에도 공원에도 많은 사람을 찾아보기 힘듭니다. 이 시간에 보이는 사람은 아침 일찍 일을 시작하는 공사장 인부들이 대부분입니다. 이곳, 골드코스트의 시간은 이제 겨우 5시를 넘기고 있지만 이미 골드코스트의 해변은 사람들이 꽤 보입니다. 아침 산책을 나온 사람들도, 아침 운동을 나온 사람도, 신난 멍멍이도 있습니다. 다른 곳이었다면 해가 뜨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해변을 떴겠지만, 지금만큼은 로컬 사람들처럼 해변을 거닙니다. 벌써부터 바다에 몸을 맡기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밀려올듯 밀려오지 않을 듯하다가 큰 파도와 함께 제 발목 위까지 덮는 얕은 바닷물이 포근하게 느껴집니다. 수영복을 가져오지 않은 게 못내 아쉽습니다. 

     

     

     

     

    저 멀리서 패들보드를 타는 사람도 있습니다. 골드코스트에서는 패들보드를 타려면 파도가 조금은 잔잔한, 꽤나 멀어보이는 곳까지 나가야 패들보드를 탈 수 있습니다. 뜨는 해를 배경으로 패들보드를 타고 있는 사람이 꽤나 부럽습니다. 조금씩 걷다 보니 고층건물이 많은 서퍼스 파라다이스까지 걸어왔습니다. 아까보다 사람들은 더 많아졌지만, 오랜만에 겪는 이 여유로운 아침 시간이 좋습니다. 여행을 다니다 보면 느끼는 많은 것들 중 하나는 자연환경이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습관이나 성격에 많은 영향을 준다는 사실입니다. 여유롭게 떠오르는 아침 햇살처럼, 시원하게 밀려오지만 포근한 바닷물처럼, 이곳의 사람들도 여유로우면서도 따스하면서도 시원한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오늘 골드코스트를 떠나야 한다는 사실이 못내 아쉽습니다. 몸을 돌려, 지금까지 돌아온 해변을 다시 거슬러 올라갑니다. 리조트까지 향하는 이 해변이 영원히 끝나지 않길 바라면서...

     

    9일간의 호주여행 이야기는 2023.01.01 - [해외여행/9일간의 호주여행] - [9일간의 호주여행 8] 오랜만에 맞이하는 해산물. 쉐라톤 그랜드 미라지 리조트 골드코스트에서의 식사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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